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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농사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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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황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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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6 (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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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사과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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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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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김혜레나
오후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이 빠른 날갯짓으로 미친 듯이 내달린다. 구름 뒤에 숨어 있던 석양은 태초의 모습으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산자락 사이마다 길게 그늘을 드리웠다. 낮 동안 토해 내지 못한 욕망을
서산마루에 기대어 황홀하게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산자락엔
그늘이 짙어 지고 이내 저녁 어스름 속에 묻혀 버린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길’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음까지 따뜻할 것
같은 남자 아나운서가 속삭이듯 던진 오프닝 멘트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머리에, 가슴에,
귀 아래 각진 턱선 까지 꽂혀 목둘레가 뻐근하고 소름이 돋았다. 동쪽을 향해 차는 달리고,
서산 너머로 태양은 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세상은 잠시 밝고 푸르다가 어둠속에 빨려 들어간다.
나는 지금 인생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 생각해 본다. 불혹의 중반을 넘기고 지천명을 향해 달리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아왔다. 누가 봐도 중년 아줌마다. 생물학적인 나이
먹음을 인정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아직은 청춘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혼의 치유사로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삶과 나이듦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핀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이듦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각종 능력이 쇠하고 외형이 볼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성장을 돕고
경험을 이어 전달하며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면서 늙어가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줄 정신적 원천을 평정에서 찾아야
된다고 말한다.
지금의 나는 빌헬름 슈미트가 말한 세 번째 분기에 접어들었다. 중년의 위기와 갱년기를 겪으며서
삶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나이듦에 대한 거부감을 피부로 느끼는
시기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을 인생 전반에 걸쳐 발휘하면서 지금 시기에만 가능한 것들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지난 것을 내려놓는 것, 부족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 살아온 인생을 천천히 떠올려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쉽지 않은 말들이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살며, 오늘 같은 내일을 습관적으로
살 거라는 걸 알기에 마음에 담아두려고 시도해볼 뿐이다.
석양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다. 이런 날은 서쪽으로 달려가 노을 속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곤 한다. 불덩이 같은 태양과 붉은 노을을 보면 알 수 없는 기운이 솟구쳤다.
지평선 가까이 갈수록 노란색에서 주황으로, 그리고 빨간색으로 점점 붉게 변하는 태양은
바람까지도 붉게 물들여 노을로 피어난다. 노을은 하루를 마감하고 또 다른 내일 맞을 준비를
하라는 신호이며, 내려놓고 비우라는 자연의 섭리인 듯 하다. 내 인생의 석양 무렵엔 누군가의
가슴에 여운을 남기는 황혼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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