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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농사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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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눈부신 봄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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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6 (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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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사과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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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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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날
김혜레나
산과들의 나무들은 연초록 물감을 뿜어내고 있다. 연노랑에서 연초록으로 변해가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삶을 향한 강인한 생명력이 떨림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무한한 잠재력 앞에 납작 엎드린다.
천등산 아래 첫 번째 집인 우리 집은 동네 입구에서 보면 서쪽의 마지막 끝집이었다. 뒷문을 열면
낮은 돌담이 있고 작은 밭을 지나면 바로 천등산 줄기로 이어진다. 해발 800미터로 제법 높은 산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어 천등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서리가 빨리 내리기 때문에
가을걷이는 서둘러 끝내야 했고 봄은 아주 더디게 왔다.
고향의 봄은 설레임과 기다림이었다. 겨우내 갇혀 있던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새싹들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새싹은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영아자 나물과 두릅이었다. 참나물, 미나리싹, 메나지싹, 모시잔대, 염마자 등 이름도 다양한
영아자 나물은 산골짜기 낮은 지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말은 ‘광녀(狂女)’ 라고 하니
참하게 생긴 나물의 모습과 너무 다른 꽃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메나지 나물이라고
하셨는데 메나지 나물 한줌과 고추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었다. 싱싱하고 윤기 나는
나물을 툭 꺾어 반으로 접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 안 가득 향이 퍼졌다. 상추 대신 삼겹살을
싸서 먹으면 환상적인 조화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게 했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 마당가는 엄마의 정원으로 피어났다. 울도 담도 없는 마당은 갖가지 꽃과
나물들이 앞 다퉈 자리싸움을 했다. 영아자 나물이 우리 집 앞마당에 자리 잡기 전에는 집에서
이십분 남짓 천등산 기슭을 올라가야 뜯을 수 있었다. 오랜 옛날에 누군가 살았을 집터 양지바른
곳에 영아자 나물이 있었다. 돌담 틈에 소복소복 올라온 영아자 나물을 칼끝으로 쓰윽 베면
단면에서 백색 즙이 올라 왔다. 엄마는 채취의 수고로움을 더시고자 어느 해엔가 뿌리까지 캐어
앞마당에 옮겨 심으셨다. 그 후로는 더 싱싱하고 쉽게 영아자 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
두해 전 봄이었다. 아버님 산소가 있는 산자락에 두릅나무를 뿌리째 캐서 농장 마당 한켠에
옮겨 심었었다. 열 그루 정도 되는 나무는 제법 잘 자라 주었고, 이른 봄 다부지게 입 여미고 있는
두릅 순을 보며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잔뜩 기대 했었다. 돈을 주면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는
두릅 순이었다. 하지만 금방 꺽어 맑은 진액이 흐르는 두릅 순을 소금물에 살짝 데쳐 먹으면
마트에서 사먹는 맛에는 비교할 수가 없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봄내음과 온몸을 전율케 하는
짜릿한 맛을 올해는 맛 볼 수가 없어 아쉽다. 신경 쓰지 못한 사이 두릅 순이 너무 피어버려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봄이 늦게 찾아가는 고향엔 지금 영아자 나물과 두릅 순이 한창일 것이다. 가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그곳, 자목련 피어 꽃 떨어진 자리에 영아자 나물이 빳빳한 목을 추켜세우며 올라오고,
철쭉나무 옆 강가 둑엔 두릅나무가 가시를 돋우고 아름다운 봄을 보내고 있는 중이리라.
엄마가 계신 고향은 늘 넉넉하고 푸근했다. 삶이 힘들 때 언제든지 달려가 품에 안겨 쉴 수 있는
안식처이자 든든한 지원자였다.
봄은 왔지만 엄마는 몇 년째 부재중이다. 막내딸 집에 오셨다가 뇌출혈로 쓰러지시고는 그 길로
일어서지 못하고 누워만 지내고 계신다. 엄마가 누워계신 요양원 창문 너머에도 꽃은 피고 지고
나무들은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요양원에 찾아온 봄은 엄마가 부재중인 고향에도 찾아가 꽃을
피우고 두릅 순을 키우고 있다. 이제는 엄마의 정원이 아닌 아버지의 정원이 되었지만 장독대 옆
백합꽃과 참나리꽃은 영악스럽게 피어 향기를 뿜어 낼 것이다.
“얘야. 뒷산에 예쁘게 생긴 작은 나무가 있더구나. 캐다가 화단에 심어보자”
큰아이 출산이 가까워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휴식 중 이었을 때다. 나는 엄마를 따라
천등산 기슭에 소나무와 떡갈나무 사이에 자라고 있는 층층나무를 캐다 심었었다. 큰아이가
스무 살이니 층층나무가 고향집 마당에 뿌리를 내린지도 스무 해가 되었다. 가지가 층층으로
달려서 수평으로 퍼져 자라기 때문에 층층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층층나무가 제법 자라
그늘을 드리울 때 아버지는 큼직한 평상을 만들어 층층나무 아래 두셨다. 매미소리 요란한 한낮엔
평상에 누워 낮잠도 청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는 찰진 옥수수를 먹으면서 붉게 물든 노을과 저녁
어스름을 온몸으로 빨아들이곤 했었다.
눈언저리가 뻐근하고 가슴이 옥죄어 온다. 이제는 몇 층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층층나무는
자라 있을 것이다. 층층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엄마랑 찬밥에 영아자 나물을 먹고 싶다. 오늘따라
유난히 천등산이 그리워지는 눈부신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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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를 위하여
아주 오래전 타임캡슐을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순우 선생님, 아동문학가 류근원 담임 선생님,
그리고 아동문학가 故 권오순 마리아 할머니와의 보석 같은 추억과 가르침들을 담았습니다.
작가가 되고픈 간절한 소망도 함께 넣어 언젠가는 꺼내 보리라 다짐 했었습니다.
그런데 삶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를 유혹 했고, 너무 다른 길을 멀리도 걸어 왔습니다. 삼십년이란
세월을 지나오면서 가끔은 추억하고 가끔은 갈망했지만, 그리로 향하는 길을 알지 못해 서성 거렸습니다.
일주일째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서 내린 소나기는 아파트 7층에도 흙 내음과 함께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느닷없이 당선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미흡한 글을 뽑아주시고 나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성거리는
나에게 타임캡슐을 열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격려해 주신 이위발 선생님 감사합니다. 보잘 것 없는
통 속을 보고도 기꺼이 환호해 주고 공감해 주는 글사랑 문학회 김혜경님, 임종설님, 고맙습니다.
이제 또 다른 나를 향해 걸어가렵니다. 고향이며, 내 문학의 고향인 천등산의 이야기로 당선되어
더욱 기쁨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삼남매와 이 기쁨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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