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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농사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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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된장국을 끓이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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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05 (0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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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안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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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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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을 끓이다가
김 혜레나
엄마는 내 나이에 나를 낳으셨다. 마흔 하고도 몇 해가 훨씬 지난 어느 봄날에.
1남 3녀 중 넷째. 둘째 아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는 아들 하나를 더 바라셨지만
나는 딸로 세상에 태어났다. 엄마가 나를 낳으시고 미역국을 눈물로 드셨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애지중지 키워주셨고 사랑받고 자랐다는 느낌이다.
뚝배기에 똥 발라 낸 멸치 댓 마리를 넣고 육수를 끓인다. 짭쪼름한 멸치 만으로
도 제법 그럴듯한 국물 맛이 만들어진다. 된장을 풀고 각종 야채와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다 보면 입안에 침이 고인다. 수없이 되풀이 되는 작업이지만 항상
맛이 기대된다. 똑같은 된장에 똑같은 재료를 넣고 끓이는데도 어떤 날은 조미료
안 넣어도 꿀맛인데, 어떤 날은 조미료 통을 들었다 놨다 고민한다. 마음에 조미료를
첨가해야 하는 날이다.
마흔 넷. 나는 어쩌다 보니 아들 하나, 딸 둘을 낳고 중년아줌마 소릴 듣는다.
농사꾼 엄마는 스물 넷 철없는 나이에 결혼 해서 가장 멀리 사는 막내딸에게 간장,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온갖 잡곡 등 부족한 것 없이 챙겨주셨다. 마늘조차 깔 시간이
없을 거라며 찧어 냉동실에 얼렸다가 싸주셨다. 그 중에 고추장은 제일 인기가 없었다.
달콤한 마트 고추장에 길들여진 입맛이 엄마표 고추장은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냉장고 유리병에 잘 모셔두고도 아까워 먹지를 못하고 있다. 고추장 뚜껑을 열면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5년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그해 여름, 엄마의 된장독은
상해 버려서 모두 퍼내 버렸다고 이상한 일이라며 올케언니가 전해 주었다. 된장도
돌아오지 못할 주인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엄마표 된장을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지난 12월, 다섯 되의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말리는 중이다. 작년 된장은 짜도 너무 짠
탓에 추운 겨울 콩을 푹 삶아 콩물과 함께 섞어두었다. 여름을 잘 버텨주길 바랄뿐이다.
몇 년째 엄마표 된장을 만들려고 시도 중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냥저냥 먹을 만하다. 더 고마운 건 아무렇게나 끓여 주어도 맛있다고 먹어주는 입맛 털털한
남편의 식성이다.
나는 올해도 장을 담그려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 이후 내가 편한 날을 택해서.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나 금기사항들은 알아도 알지 못한다. 지킬 자신이 없어서다. 그것들이 된장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일 지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를 고집한다. 머지않은 어느 날에 우리집 딸들이
엄마표 된장을 찾을지, 시어머니 된장이 더 맛있다고 친정표 된장을 외면할지 약간은 조바심이
생기지만 언제나 맛있게 먹어 줄 남편이 있기에 부담없이 장을 담그련다. 햇살 고운 이른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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